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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훈의 문화 등정] 올림픽, 잔치가 끝나간다

오영훈(문화 칼럼니스트)


   뭘 먹고 싶으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영 대답하기 어렵다. 물론 좋고 싫은 음식은 있다. 다만 내겐 별로 중요치 않은 질문이다.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 음식 맛에만 온통 정신이 팔린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할라치면 ‘과연 사람이란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구나’하고 느껴질 정도다.


   평창올림픽을 보면서 음식을 떠올렸다. 스포츠란 마치 음식과도 같다. 가령 깨진 그릇은 음식 맛을 그르친다. 정치색 같은 게 어색하게 덧칠되면 이 나간 사기그릇처럼 영 스포츠의 묘미가 반감된다. 반대로 그릇 구분 없이 반찬들을 죄다 한 데 몰아넣고 썩썩 비벼먹기라도 할라치면 자칫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되기 십상이듯, ‘순수 스포츠’란 국적‧지역 따위의 정체성 구분이 없다면 또 볼 맛이 없다.


   올림픽이 바로 그렇다. 언뜻 음식-스포츠에 다들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건 들러리에 불과하다. 젓가락질에서부터 오고가는 대화까지, 먹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 그러니까 남북 정치인의 만남이라든가 선수들 간의 팀워크 및 파벌 문제, 각종 말말 따위들에 올림픽 기간 내내 온통 떠들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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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는 요리를 마주한 식탁


  즉 경기 내용보다도 이를 둘러싼 얘깃거리가 올림픽의 화제다. 엊저녁에 뭘 먹었느냐보다 누구와 먹었느냐가 더 궁금한 셈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두고 정치판은 좌우 공방전을 벌이는가 하면, 국가보다 개인이 먼저인 젊은 층에게는 갑작스런 단일팀이야말로 이 나간 그릇과도 같다. 미주교포 2세로 스노보드 금메달을 딴 17세 소녀 클로이 김은 ‘한민족’과 한 핏줄로 엮이어 언론의 관심을 끈다. 스켈레톤 최초 금메달을 딴 윤성빈 선수의 고교 시절 SNS 채팅 입담이 인터넷을 달구는가 하면,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세부종목의 ‘왕따’ 논란은 청와대 국민청원 최단시간 신기록을 넘어 외신까지 탈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무엇보다 “세계를 손님으로 맞아 잔치를 연다.”는 발상이야말로 이번 올림픽에 대해 한반도가 보여준 가장 특출하고도 대담한 향토적인 상상이 아닐까. 개막식 공연부터 그 시작이었다. 조화(전통문화)와 융합(현대문화)을 키워드로, 역경을 딛고 올림픽을 여는 대한민국 역사를 은유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즉 세계를 상상하는 방식부터 말 그대로 ‘한국식’이다.

 


타인의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나


   세계에 대한 메시지의 눈높이가 밖에 있지 않고 거꾸로 우리에게 맞춰있단 얘기다. 네티즌과 언론, 평론가 모두 같은 박자에 어울린다. 예를 들어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평화‧웰빙‧행복이라는 평창의 메시지가 다보스포럼의 메시지 ‘공유미래’보다 더 넓고 본질적이라며 세계 평화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장하기도 했다(중앙일보 2월 20일자). 손님은 잔칫집 주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만 기울이고 있으란 말인가. 어느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는 기자회견장에서 뜬금없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두고 쓴 소리를 했는데, 동양의 잔칫집 주인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조화와 융합의 한국식 세계평화’를 기치로 달려드는 댓글러들을 어찌할 것인가! 평창에 다른 종류의 세계관이 설 자리는 꽤나 좁아 보인다.


   그러니까 이게 곧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다. 실수로 옆 사람을 밀어버린 쇼트트랙 선수들은 상대가 누구였는지에 따라 애국자 아니면 매국노로 둔갑한다. 빛의 속도로 달려댄 약관의 선수들은, 궁핍했던 과거를 딛고 마침내 이룬 눈부신 경제발전과 금메달을 동일시하며 감격에 빠진 중년들의 찬사를 맛보고 또 4년을 이를 악물고 달릴 테다. 그렇게 우리가 상상하는 ‘평화의 세계무대’는 애국‧발전‧인내로 번역돼 다음 세대가 이어받는다.



‘빙속여제’ 이상화의 한계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가 아쉽게 금메달을 놓쳐 눈물을 흘리니 우승한 일본선수가 와서 어깨를 감싸며 달래준다. 여기서 받는 감동은 우리가 스포츠 당사자가 아니라 스포츠 관람객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양국 간 해묵은 갈등이 시청자들의 화면에는 자막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음식자체’ 운동선수들을 소비하는 식탁에 다들 둘러앉은 셈이다. 식탁의 고조된 분위기를 한바탕 탄성으로 바꿔놓았으니 이상화의 은메달은 금메달보다 값지다는 찬사를 받을 만도 했다.


   하지만 ‘세계평화’의 단초가 되기에는 이상화식 감동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다. 쉬운 예로 금메달이 아니라 금은동 메달 개수 총합으로 순위를 계산하는 미국에서는 메달 색깔은 둘째다. 게다가 미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의회 연설에서 클로이 김의 성공스토리를 소개하며 “기억하자, 클로이 김의 이야기는 미국 이민의 이야기”라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공격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나라’에서 메달을 딴 본인이 대체 어떤 감상을 가졌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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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은 누가 치우나


   한바탕 잔치가 끝나가는 데 상은 누가 치울까. 최영미 시인은 식당 주인 대신 누군가가 마지막까지 남아서는 ‘그 모든 걸 기억해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상을 치워 주리라 예견했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런데 저만치 비켜섰던 어제의 주인공,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침내 물러가버릴지도 모르겠다며 시는 끝을 맺는다. 역사라는 불구경을 그만두고 말없이 사라져 버려야 했던 건 이름 없는 운동권만이 아니라 지나간 모든 운동선수 영웅들의 이야기다. ‘모 아니면 도’로 모든 걸 거는 게 풍류의 참맛이라지만 그러는 사이 난장판이 된 잔치판은 누가 책임질 건가. 허무함을 넘어 골칫거리로 남는다. 스키장 건설로 훼손된 가리왕산, 쏟아 부은 막대한 예산 등 당면한 갈등거리가 기다린다. 올림픽 잔치가 평화보다는 허울로 기억될까 벌써부터 근심이다.


   그러니 어깨에 힘 좀 빼고 올림픽을 보자. 음식 맛에 집중하는 이도 있고 누구와 먹었는지가 더 중요한 이도 있다. 진짜 평화는 다름을 받아주고 폭력을 소멸시키는 데에서 시작될 거다. 단 어느 틈에 허무하게 물러서지는 말고 꾸준히 함께 하는 게 낫겠다. 어제의 주인공도 끼워 주고, 클로이 같은 손님의 얘기도 듣자. 메달의 거품을 먼저 빼야 증오의 거품도 빠질 수 있다. 그래야 폭로와 심판과 반격으로 이어지는 난폭한 잔치보다는 정직과 사과와 변화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작성일 : 2018.02.23
저자 소개  

오영훈
1978년생. 문화 칼럼니스트. 《문화 다》편집동인. 《산악연감》 편집위원.
인류학 박사. 네팔 셰르파족을 연구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랐음. 월간 <산>, 월간 <마운틴> 등에 기고. 7mmr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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