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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전성욱의 『남은 자들의 말』(오월의 봄, 2017)

말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는 남은 자들의 슬픔
 문학은 먼저 간 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80년 5월, 그 10여 일 동안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
 한국 소설은 그날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문학을 통해 본 광주의 서사정치학


  “위대한 문학은 그렇게 살아내는 것에 육박하는 표현으로써 건널 수 없는 경계를 넘으려는 무모한 의욕이다.” 


   “진실은 쉽게 해명될 수 없고, 고통은 완전히 제거될 수 없으며,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완료되지 않는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그 이후 한국 현대사를 바꿀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5월은 기억으로 보존된 과거의 기념비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남은 자들에게 힘겨운 대답을 요청하는 현재이다. 그런 만큼 남은 자들은 그동안 수없이 5월 광주에 대해 말하려 했고, 증언하려 했다. 때로는 학술 논문으로, 때로는 시로, 때로는 소설로 5월 광주를 형상화해왔다. 문학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등을 통해 5월 광주를 그린 작품들도 많다.


   이 책의 저자 전성욱은 5월 광주를 다룬 문학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에 주목하면서 그동안 남은 자들이 어떻게 5월 광주를 기록했는지를 분석한다. 지금까지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문학 분야의 학술적 논의는 대단히 간소하고 빈약했다. 그러므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5월 광주에 관한 소설 작품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5월 광주와 관련한 연구들은 학술활동이었다기보다는 진보운동의 차원에 기울어 선입견이 크게 작용해왔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를테면 이제까지 5월 광주를 다룬 작품들은 증언이나 저항, 진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정치적인 당위 등과 관련해 분석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작품의 미학적 표현은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5월 광주를 다룬 작품을 ‘재현의 기획’과 ‘표현의 기획’로 구분해 설명한다. 재현의 기획에서 강조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과 민중 수난의 역사로서 사건의 의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대체로 그것은 희생의 숭고함에 대한 비장한 감수성으로 가해의 난폭함과 희생의 비참함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 희생은 역사적인 차원에서 영웅화되고 이념적인 차원에서 신화화된다. 반면 표현의 기획은 정치적 견해의 노출보다는 역사의 기억과 그 재현의 가능성을 탐문하면서 언어의 한계에 대한 자의식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학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실천을 구현하고자 한다. 저자는 그동안 많은 상찬을 받은 임철우의 《봄날》이 ‘재현의 기획’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작가에게 부과된 죄책감이 과도하게 진실 복원의 강박에만 매달린 나머지 미학적 표현은 고려되지 않은 것을 비판한다. 반면 정찬의 《광야》와 <슬픔의 노래>는 언어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으로 그 진실에 대한 ‘표현’의 열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밖에 유서로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된 김신운의 《청동조서》를 서사적 기교를 통해 ‘재현’을 넘어서려는 ‘표현’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더불어 박솔뫼의 <그럼 무얼 부르지>를 진실의 형이상학을 질문의 형식으로 내파하고 있는 작품이라며 특별히 주목하기도 했다.

 

   저자는 남은 자들은 결코 그 사건에 가닿을 수 없으며, 그래서 죽은 자들에 공감하거나 그들을 대신해 증언할 수 있다는 마음은 허황된 의욕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자들은 문학으로써 그 허황된 의욕을 무릅쓰고서라도 기록을 해야 하고, 기록을 하려고 들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5월 이후 살아남은 자들은 5월 광주를 문학을 통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말할 수 없는 말, 그 말로써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작품의 미학적인 완성도와 정치적 실천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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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은 5월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Ⅱ장에서는 5월 광주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분석과 함께 기억과 증언(재현/표현)의 정치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5월 광주는 특정 입장의 견해로 종합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저자가 시도하는 역사적 의미의 정치적 구조화 작업은 역설적이다. 하지만 5월은 기술 불가능한 사건이기 이전에 기억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증언의 아포리아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증언되고 있는 현재의 사건이기 때문에 그 작업의 필요성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5월은 여전히 단독성의 사건이지만 구조화하는 작업은 단지 지금까지 5월 광주를 어떤 담론으로 해석했는지를 참고하는 데 의의를 두고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Ⅲ장에서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부과된 죄책감이 소설 작품 속에서 사실(진실) 복원의 형이상학에 대한 엄중한 도덕률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임철우의 《봄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임철우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살아남은 자로서 글을 쓰며 강박적으로 그날을 재현하고자 한 서사의 매커니즘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와 달리 언표 불가능한 진실로서의 5월을 탐문하면서, 언어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으로 그 진실에 대한 ‘표현’의 열망을 드러내고 있는 정찬의 《광야》와 <슬픔의 노래>를 소개한다. 여기에 더해 2인칭으로 서술된 유서로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알레고리 형식으로 쓰여진 김신운의 《청동조서》를 예로 들며 '재현'을 넘어서려는 '표현'의 의지를 가진 작품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1980년 그날의 기억 혹은 죄책감에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진실의 형이상학을 질문의 형식으로 내파(해체)하고 있는 박솔뫼의 〈그럼 무얼 부르지〉와 같은 작품도 있음을 알린다.

 

   Ⅳ장에서는 기존의 5월을 다룬 소설이 대체로 폭력과 치유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선행연구들에서 이미 다루어졌던 남은 자들의 죄의식과 심리적 상흔 그리고 치유에 대하여 설명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참조하면서 증상과 치유의 복잡한 관계들을 그 유형에 따라 분류해서 소개한다. 이를 통해 심리적 상흔을 다룬 소설들에서 자주 반복되는 서사의 어떤 상투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한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아픔을 그저 봉합하고 은폐하는 ‘치료’의 서사는 마치 인과론적인 필연성처럼 고통의 기억과 함께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자동적으로 불러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Ⅴ장에서는 이른바 여정의 서사를 '순례의 형이상학'이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여정의 서사는 치료와 봉합으로 귀결되거나 주체의 정체성 형성으로 매듭지어지는 목적 지향성의 여정이 있다. 반대로 고통이 심화되는 주체 분열의 여정도 있다. 이 둘을 대비하면서 화해와 청산의 여정이 서사를 정합적으로 만드는 불가능한 애도의 길임을 설명한다.


문학은 4월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이제껏 5월의 진실에 근접하려 했던 많은 소설들이 그 경험의 진리에 대한 증언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앞으로 더 이상 경험이 진실을 표상한다거나 그 경험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5월의 진실은 쉽게 해명될 수 없고, 남은 자들의 고통은 완전히 제거될 수 없으며 그들의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완료되지 않는다. 이제 5월 광주의 그 아포리아는 새로운 ‘주체’의 구성이라는 난제와 만난다. 다시 말해, 5월 광주의 서사정치학이라는 문학의 문제는 ‘사건’ 이후의 문학적 주체들을 재정립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사건 이후의 문학적 주체는 진실에 대한 의무로부터 해방되고 고통의 제거를 치유라 오해하지 않으며 어느 곳에 도착하려는 의지보다는 여정 그 자체의 흐름을 변이시키는 주체를 탐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건의 특이성들이 산란하는 의미의 운동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진실 그 근처에 가닿을 수 있다. 말할 수 없지만 말을 해야만 하고, 말해야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는 그 무력함이 남은 자들의 트라우마 이후의 삶을 집요하게 지배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문학이 개입할 수 있는 틈새가 열릴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남은 자들은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먼저 간 자들이 남긴 흔적에 가까스로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작성일 :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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