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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 다 신작 미니픽션] 홍구보의 「세 여자」(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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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홍구보(소설가)

 

   백수 3년 차 신갑수 씨는 시청 간부공무원으로 퇴직했다. 그동안 배산임수 언덕에 이층 양옥을 짓고 마당에 잔디를 심었다. 텃밭에 블루베리와 아로니아 묘목을 심고, 담 밑에 유리 온실을 지어 각종 난을 길렀다. 건강관리는 매일 해 뜨기 전, 진돗개를 앞세워 동네 앞산을 두 시간 동안 돌았다. , 술 담배를 멀리하고, 짠 반찬은 아예 입에 안 대고 건강식만 챙겨 먹으니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퇴직 후 3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알찬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불안의 그림자가 계속 따라다녔다. ‘뭐지?’ 하며 자문자답을 해도 딱히 이거다라 말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직장 동료를 산책길에서 만났는데 불안의 꼬투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

 

  “, 김 과장 오랜만일세. 신수 좋구만!”

 

  “그래, 신 과장도 늙지 않고 그대로네?”

  덕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진 후 가만히 있자, 김 과장 이름이 뭐더라?’하며 하루 종일 생각해도 헛수고였다.

    이건가? 망각 증세!’

 

   중얼거리며 퇴직 전까지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역시 성까지만 입 안에서 뱅뱅 돌고 얼굴, 몸집, 말투만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불안의 실체를 치유하기 위한 방책으로 유행가 가사 외우기를 택하였다. 직장에 다닐 때, 술집보다 더 자주 갔던 곳이 노래방이었다. 천장의 고보레이져 조명 아래 마이크를 잡고 지난 세월과 속상한 현실을 노래로 풀었는데, 이젠 가사는 물론 제목조차 아련할 뿐이었다.

   신갑수 씨는 퇴직한 후 노래방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알차기만 한 나날이었지, 신이나 흥이 날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밤새도록 궁리한 끝에 노래방 대신, 노래방기기를 사기로 작심했다. 웃음도 억지로 웃으면 웃게 된다지 않은가. 그러나 이튿날 아침, 싱크대 앞에 서있는 아내의 살찐 뒷모습을 보자 그 결심은 물거품이 되었다. 말 꺼내봐야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차선책으로 장터에서 효도 MP3’를 사서 밤낮없이 들으며 흥얼거렸다.

   시끄러워욧, 명색이 시청 과장 출신이 통기타 치며 고상한 노래라면 모를까, 밤낮 저질 유행가나 듣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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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통기타란 말에 귀가 번쩍 트이고,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라 여겨 문화원으로 득달같이 찾아갔다. 주차장과 복도, 사무실에서 만난 여러 수강생들이 어머, 신 과장님 오랜만이네요!”라며 먼저 인사를 했다. 그는 자신이 전직 간부공무원 출신이라는 걸 깜박 잊었다는 듯 점잖게 미소 지으며 통기타기초반에 등록을 했다. 문화원을 나설 때는 한층 기분이 업up되어 내비게이션 여자와 마누라 말 잘 들으면 만사형통이란 신 속담을 되새겼다. 그 때, 이층 강의실에서 통기타 반주와 함께 노래가 들려왔다.

   세월도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큰딸 아이 결혼 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신갑수 씨는 많이 듣던 노래인데, 가수 이름이 뭐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김광석이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포스터와 대구에 가수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는 걸 상기했다. 그는 차에 앉아 저 가수의 노래를 기타 치며 멋지게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엔돌핀이 온 몸에 막 도는 듯했다.

   그날 이후, 그는 기타 교본을 보며 음계와 코드, 음표를 익히고 스트로트 주법으로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했다. 문화원 기초반에서 중급반으로 월반할 만큼 실력이 향상되었고, 김광석의 곡을 자유자재로 기타 치며 노래 불렀다. 여러 노래 중에 이상하게 그의 노래 가사가 제일 외우기 쉬웠다. 게다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라졌던 감성이 되살아나고, 세상을 관조하는 습관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가사를 막힘없이 외웠다는 자부심으로 망각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날이 갈수록 김광석의 노래 부르기에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신갑수 씨는 비밀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자신의 삶을 노래로 저항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날도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중에서 한껏 감정을 잡아 그대보내고멀리가을새와작별하듯그대떠나보내고돌아와술잔앞에앉으면눈물이나누나라 부르는데, 아내가 퉁수바리를 주며 다가왔다.

   시끄러워 욧, 맨날 그 놈의 사랑타령, 지겹지도 않노?”

 

   “뭔 소리야? 노래 뜻도 모르면서?”

 

   “다 늙어, 첫사랑인지 숨겨놓은 사랑인지 그만 찾고, 저 윗동네 통장이 왜 죽었는지나 알아보소?”

 

  “? 그 통장이 왜 죽어?”

 

  “한 길 사람 속을 모른다더니 글쎄, 지난밤에 하우스에서 목매어 죽었데.”

   이게 뭔 소리인가? 반문하면서도 통장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늘 아내와 같이 경운기를 타고 시장으로 갈 때 웃으며 손 흔들어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부부금실이 좋다고 소문났고, 하우스 농사로 동네에서 현찰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더구나 동장으로 근무할 때, 동갑이라는 이유로 쉽게 친해졌고, 그의 소개로 지금 사는 집의 부지와 텃밭을 샀을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신갑수 씨가 통장의 집에 가자 벌써 노란 금줄 앞에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통장과 자주 술을 같이 마셨다는 옆집 아저씨가 눈이 충혈 된 체 전후사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과 틀린 증언에 세상에!”를 연발했다. 통장 아내는 겉모습과 달리 중증 의부증 환자인데다, 하우스 농사 수입 일체를 혼자 관리할 정도로 돈에 집착했다. 사건의 발단은 통장 아내가 감기몸살에 걸려 장에 못 따라갔는데, 남편이 돌아오자 돈부터 세더니 추궁하기 시작했다. ‘돈이 모자라는데, 어디에 썼나? 정미소 앞에 경우기를 세우던데, 어떤 년을 옆에 태우고 갔나?’라 밤새도록 바가지를 긁자, 홧김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신갑수 씨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자초지종을 채근했다. ‘거 봐,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하며 팩트가 아니라 자기 확신을 체크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뉴스에 김광석의 처가 TV에 나왔는데, 그동안 궁금증을 유발했던 재판 판결에서 무혐의를 선고받았다. 그녀는 실체를 명확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마녀사냥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명예를 더럽힌 당사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며 유들유들한 얼굴로 인터뷰를 했다.

 

   통장 삼우제가 지난 후 첫 장날, 신갑수 씨의 아내가 장보러 가자고 불렀다. 이래저래 맥이 풀렸던 그는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장터로 들어섰다. 파출소와 어물전을 지나 야채전 앞을 지나는데, 아내가 스톱!’하며 소리쳤다. 그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자, 아내는 범인을 추적하는 잠복형사처럼 차창 넘어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여보. 저기 통장 아내가 보이지? 멀쩡한 남편을 죽여 장사 지낸지 얼마나 됐다고, 돈 벌러 벌써 장터에 나오다니 대단해, 저 여편네!”

 

   창밖을 보는 아내의 옆얼굴을 보자, 무혐의로 기고만장해진 김광석의 아내와 흡사하게 보였다. ,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난전에 야채를 파는 통장 아내도 두 여자와 너무 비슷했다. 신갑수 씨는 문득 김광석 노래 부르기를 당분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부를 때마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드는 재미로 노래를 불렀는데 유들유들한 세 여자가 번갈아가며 방해를 할 것만 같고 또, 이러는 자체가 김광석 노래에 대한 모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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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1.11
저자 소개  

홍구보
소설가.
. 김유정소설문학상 수상(1999년), 소설집 『조통장 난봉기』, 『그물너머』, 산문집 『북평장터 이야기』 발간. hgooboo2@naver.com  
[댓글]
 
강동희  [2018-01-31 20:00]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소나  [2018-01-29 21:18]
짧은 소설 속에서 여러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심심한 일상에 생각거리를 던져 주셔서 감사합니당^^*~
 
박윤수  [2018-01-24 16:16]
잘 읽었습니다. 한번도 쉬지않고 끝까지 읽었네요!
 
유일남  [2018-01-23 21:05]
홍작가님! 잘 읽었습니다ㆍ60대 중반인 저로서는 많이 공감되는 글 입니다ㆍ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조연섭  [2018-01-20 06:37]
역시 정치는 적을 만들고 문화는 친구를 만들군요.. 문화가 흐르는 갈등의 과정과 해소과정이 인상적입니다.
 
박윤혜  [2018-01-19 15:47]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거울앞으로가 제모습을 보았네요ㅋㅋ 남편에게 어떤모습으로 보여질지..결혼8년차 대한민국 평범한 주부.. 세여자와 닮은듯 닮지않길바라는 맘이 씁쓸하네요..ㅜㅜ
 
김영채  [2018-01-18 15:38]
재밌어서 순식간에 봤어요.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김광석의 거리에서를 참 좋아했는데.
 
박찬미  [2018-01-18 13:47]
재밌어요
우리 부모님 모습과 비슷하여 미소짓고 읽었어요
 
이현수  [2018-01-17 13:26]
현 세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자화상 같아 한편으론 서글픈 감정이 드네요
 
이유정  [2018-01-17 08:54]
2편도있었으면합니다...신갑수씨의기억력은어떻게될까요...?
 
박선호  [2018-01-16 22:20]
글을 보니 젊은시절 옛생각이 나네요
기대됩니다
 
김수희  [2018-01-16 21:24]
글잘읽었습니다. 김광석도위소설과같은이유로자살하지않았을까...?라는생각도드네요...
 
최세희  [2018-01-16 17:03]
내리막길에 접어든 우리들의 자화삼을 보노라니 마믐이 짱합니다
 
이용진  [2018-01-16 16:38]
시기 적절한 중년의 멋진 삶과 갈망에 대한 풍자가
세여자로 드러난 이야기가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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