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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여자의 읽기] 대한민국 아줌마의 민낯

-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한겨레 출판사, 2015)


정은경(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최근 미국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마치고 온 사람을 만났다. 학위논문 주제가 뭐냐고 물었더니 “인식론적 원리론과 허용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짐작할 수도 없는 내용이라 핵심 요지만 물었더니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는데, 그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딱 한 가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한 가지 믿음(진리)만 허용되는 게 좋은가, 혹은 두 가지 이상의 믿음이 허용되는 게 좋은가’에 관한 논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식한 게 힘이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가지가 좋을 듯합니다.’ 이 대답에는 나름 삶의 경험치가 묻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단 하나가 아니라 좀더 다양한 믿음과 진리가 용인되고 있으며, 나도 원칙적으로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길지 않은 삶의 시간 동안 나를 자꾸 몰아가는 것은 비판적 사유의 험난한 행로, 자유에 대한 책임, 반대자의 고통을 개개인이 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믿음’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주어진 그것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덜 피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은 교육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풍속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부모라면 의례히 갖게 되는 아이 교육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길이란 한 공익광고에서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그 갈림길이다. 그러나 󰡔잠실동 사람들󰡕은 이 공익 광고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극성은 ‘학부모’라는 존재 차원에서 힘을 얻는 게 아니라 ‘부모’라는 힘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학력이 지금 우리 사회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분상승 사다리임을 알고 있는 어른은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에 올인한다. 


   대학이 이후 삶을 결정할 계급 지표라는 사실은, 입시전쟁이라는 그 고지를 향해 유치원생부터 달리게 한다. 사법고시 폐지, 엄청난 액수의 로스쿨 등록금, 극심한 취업 경쟁 등은 계급 상승의 ‘사다리’를 거두어 가버렸고, 대학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기루’같은 희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신기루 또한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학업 성취도가 소득 격차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통계가 보여주고 있으며, 부의 세습이 학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016년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신청 통계에 따르면 SKY 재학생 중 약 73%가 소득 9~10분위이거나 국가장학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을 정도의 ‘부유층’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그 예가 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헛말이 되어버린 현재,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력을 다해 아이들 교육에 자산을 투자하고 과잉교육은 아이들을 학원형 로봇이라는 지극히 수동적 인간으로 ‘사물화’ 시키고 있다.

 

   얼마 전 결혼식에서 친인척을 만났는데, 놀라운 것은 그들 자녀들 70%이상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나 외국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그들의 경제력이 대한민국의 상위층이라고 할 수 없는 부자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만한 중산층 정도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사교육비가 지난해엔 학생 1명당 월 평균 25만 6천원으로 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주변의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이 평균치에 대해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개 외동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들인 그녀들은 이 수치의 2~3배 가량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균치에는 사교육비의 격차와 그 결과의 표정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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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동 사람들』은 이 평균치의 다섯 배 이상을 사교육에 쏟아붓는, 소위 교육특구라는 잠실동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는 작품이다. 교육의 메카라는 대치동 근처의 잠실동에서 대치동 학원으로 매일 아이들을 ‘라이드’하는 엄마들, 150만원 넘는 영어유치원과 50만원이 넘는 영어 학원은 필수이고, 초등학교 6학년이 새벽 2시까지 수학공부를 하는 살벌한 풍경이 있는 곳이 이 잠실동이다. 이곳 엄마들의 일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하고, 집 안을 청소하고, 마트에 다녀오고, 점심을 대충 때우고, 학교에서 돌아온 지성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해성의 숙제를 챙겨주고, 간식을 만들고, 해성의 회화 선생님을 모셔오고, 지성을 데리러 가서 다음 학원으로 넣어주고, 해성의 회화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고…….  시간을 체크하며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가 버린다. 돌아보면 ‘난 오늘 무엇을 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없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다. (132쪽)
 
  지난달부터 지성은 KMO(한국수학올림피아드) 1차 수상을 목표로 옥슨에서 화, 목에 보충 수업을 받는다. 정규 수업을 마친 뒤 다른 친구들 셋과 함께 추가로 집중 교습을 받는 것이다. 새벽까지 학원에서 교습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 엄마들이 인근 카페를 빌려 선생님을 초빙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카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새벽 2시 반이다. 때문에 유미의 화, 목 일과는 지성을 픽업해 돌아오는 새벽 3시에야 끝난다.(157쪽)


   아이들의 일과를 짜고, 밤늦은 시각까지 학원과 학원 사이에서 아이들을 옮기는 운전기사 노릇을 하는 엄마들, 그들은 바깥의 일이 없어서 전업엄마를 하는 여성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전념하는, 강력한 모성성을 지닌 이들로 그려진다. 가령 위의 지성엄마 장유미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아들 지성의 사회성을 위해 둘째를 낳고 이들을 잘 키우는 것을 생애 목표로 삼고 있는 여성이다.


   지성을 낳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지성은 탄생과 동시에 유미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시뻘건 핏덩이에게 그녀는 젊음과 자유와 의지 같은, 인생의 모든 여유를 송두리째 바쳐야 했다. 그것은 자의라고도, 사회의 강요라고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에 의한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만을 합쳐놓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아이 앞에서는 자동으로 물러섰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는 듯 자발적으로 희생했다.(131쪽)


   장유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들을 위해, 자기계발과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이 전업주부, 전업엄마라는 역할에는 오로지 아이교육전문가라는 유일한 역할의 수행만이 주어졌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가사노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호사, 외국인 회사 임원 등의 남편의 경제력으로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허드렛일을 해치운다. 이들 모성성의 유일한 목표와 의미는,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입히고 집안일을 가꾸고 하는 일이 아니라, 대학입시전문가와 교육플래너로 향해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엄마들이  가족이라는 계급 단위의 재생산의 주체이자 역군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방국립대학의 유아교육학과를 나와 전업주부가 된 중산층 주부 박수정은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아이 교육을 생각해 잠실로 들어왔다. 잠실에 입성해서는 현실에 완전히 눈을 떴다. 서울로 대학을 왔어야 했구나! 유치원 교사가 아니라 의사나 판검사가 됐어야 했구나! 자신 안에 내재한 거대한 상승 욕구를 채우기에 유치원 교사는 모자라도 턱없이 모자란 직업이었다. 잠실에 이사 온지 1년 째 되던 날, 수정은 다니던 유치원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지환과 지나 교육에 올인했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 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 집이 가난하고, 촌년이라고 놀림당하는 설움을 자식들에겐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90쪽)
 
   상류층과 저소득층을 막론하고 계급재생산의 주역이 되어버린 엄마들은 가족의 욕망을 대신하여 자본주의 교육시장에서 남편의 경제력을 밑천으로 베팅에 올인한다. 영어 강사 더글라스가 수능 때문에 비행기 시간이 연착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자, 그의 애인 세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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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와 일가친척들이 자식이라는 경주마에게 엄청난 돈을 베팅하는 거지. 이 베팅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돼. 아니다, 요즘엔 그 연령대가 더 낮아진 것 같아. 너도 엊그제 잠실의 네 살짜리 애 하나 가르치게 됐다 그랬지? 걔도 경주마야. 아주 어릴 적부터 길러지는. 


   베팅엔 여러 종류의 자본이 들어가. 돈은 물론이고 부모의 시간, 정보력, 노동력, 사교력, 여가까지. 최근 몇 년 동안엔 경마 판에 등장하는 관계자들의 다양화가 일어나면서 그들 사이에 자리싸움과 분파, 합종연횡 현상이 숨 가쁘게 일어났어. 그러면서 판돈이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사설 학원이 대표적인 관계자고 출판사, 교재 전문가, 시험 출제위원, 광고대행사, 학원 광고를 받아서 먹고사는 신문사, 그 신문사 기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정치인…… 온갖 인간들이 이 판에 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는 실정이라 판이 개선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지. 사실 우리도 그 판의 관계자라고 할 수 있고. (123쪽)


   계급 상승, 혹은 세습의 욕망은 각종 사교육계 관련자들, 교육종사자들, 출판업계, 언론, 정치인들을 움직이고, 이들 움직임에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돈이 들러붙게 마련이고 그렇게 형성된 교육자본시장은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누구도 감히 어찌해볼 수 없는 중요한 경제분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 거대한 도가니 같은 교육판은 과외 폐지, 학생부종합전형이니, 고교 평준화, 정시무력화, 논술 전형 등의 한두 가지 조치와 결단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교육받고 균등한 기회를 갖는 것이 이상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그 유토피아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유재산을 없애고 계급격차를 없애자는 공산주의 사회가 인류의 이상이라는 것은 알지만, 실상 개인들은 그 이상향을 원치 않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사람들은 대개 남들보다 더 많은 부와 명예, 권력을 욕망한다. 과거 전근대적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에 의해 과거 못지않은 강고한 신분제로 재편된 자유평등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이제 그 신분을 결정하는 중요한 매개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모두가 교육에 올인할 수밖에. 이는 자원이 부족하고 자유경쟁이 치열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의 󰡔결혼 시장󰡕에 의하면 미국의 계급에 따른 성적 격차가 과거 25년 전보다 30~40퍼센트 더 벌어졌고, 그 격차는 생후 18개월 이후의 아이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상위 중산층은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가족 자산을 늘리고 이를 이용해 가사노동의 부담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다양한 활동에 참여시킬 뿐 아니라, 공동양육에 있어서도 가난한 집단보다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결과처럼 한국에서도 계급 격차에 따른 성적 격차는 단순히 학원비 지출에 의한 것이 아닌 노동력, 시간, 양육태도 등에 의한 다양한 자산에 의해 결정되고 있으며, 더 절망스러운 것은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삶의 태도나 인격적으로 더 나은 자질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잠실동 사람들󰡕의 ‘태민’처럼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추상적인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내면에 분노가 쌓이고 그것이 기이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문제아도 있고, 게임과 학습에만 길들여져 소통과 공감에 무능을 보이는 학생들도 많지만, 요새의 영리한 부모들은 그 학습 경쟁력에 삶의 뛰어난 자질까지 덧붙여주고 있는 것이 추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아이의 교육과 삶 일체, 그리고 그것이 한국이라는 현실적 지형에서 실현되는 방식을 ‘엄마’이기 때문에 여성이 다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잠실동 사람들󰡕의 경훈 엄마인 ‘강희진’은 의대에서도 수석을 놓지 않았던 수재였고,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일했으나 실어증 증상을 보이는 경훈으로 인해 전업을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된다.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죄책감과 조바심으로 괴로워하던 희진은 이 난국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의 꿈을 접어버린 것이다. 대신 ‘잘 노는 의대생’이었던 남편은 화려한 이력을 통해 권위있는 전문의로 자리잡게 된다. 희진만큼은 아니더라도 󰡔잠실동 사람들󰡕의 엄마들은 대개 자의와 강요에 의해 전통적인 성별 분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희진처럼 제 아무리 현대의 똑똑한 여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결과를 비켜가지 못하는 걸 보면, 임신과 출산을 거부해야만 여성해방이 가능하다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파이어스톤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에도 돌이켜보면, 대학원 시절 동료들 중 아이를 둔 여자동료들은 학위를 마쳤으나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일하거나, 둘째 출산과 함께 공부를 그만 두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 남편은 대개 그녀들을 대신해 학위를 마치고 대학에 취직해서 그들을 먹여살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녀들 중에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엄마에게 학위가 무슨 소용 있느냐고? 그렇지 않아.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교육을 위해 남자들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지.” 한국 여성이 좋은 교육을 받은 지혜로운 엄마여야하는 이유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육아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서술한대로 전업엄마에게는 가사노동이 아니라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교육시킬지에 대한 수많은 갈림길에서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중대한 의무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때로 그 선택이란 사실 닫힌 한국사회에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기도 한데, 그 불가능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엄마들은 때론 무겁고 외로운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가령, 『잠실동 사람들』에 등장하는 경훈 엄마 희진은, 초등 2학년생인 경훈을 피아노, 태권도 학원만 보내고 아이를 자유롭게 놀게 하는 ‘유럽식’ 엄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훈은 온갖 교내 경시대회에서 수상하는 뛰어난 아이로 그려진다. ‘경훈’은 사실 모든 엄마가 꿈꾸는 모델이지만, 소설 속 엄마들은 아무도 자신의 아이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경훈의 사례는 매우 드물뿐더러, 현실적으로는 경훈 모델은 방치되고 있는 저소득층 아이의 전형적인 일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동의 경우 학원이 아니라면 놀만한 또래 친구를 만날 수도 없기 때문에, ‘놀이’를 위해서라도 학원에 가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엄마들은 아이들의 행복이 자유로운 놀이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그런 대안적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대안적 삶은 대안학교(입시 위주의 대안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대안학교)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이후의 삶을 보장해줄 다른 길이 한국에는 없다. 이는 그토록 많은 엄마들이 ‘부모와 학부모의 길’이라는 갈림길에서 학부모의 길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앞서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믿음이 차라리 하나인 것이 낫다는 나의 생각과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다. 거시적이며 떳떳한 시야를 가진 엄마의 어떤 내면은 전쟁터와도 같은 사교육 시장을 멀리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나삶의 복잡다단 경험을 거쳐 검증된 처세술은 아이를 그 전쟁터로 몰고 간다. 이는 『잠실동 사람들』의 초등교사 김미하가 전교조를 탈퇴하고 학교 불의에 눈감으며 교직생활에 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이기도 하다.


   남편의 두 번째 해직(총장 컴백) 이후 ‘대의’를 앞세워 가족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모순된 사람이라는 것이 그녀의 세계관이 되었다. 불의를 못 참는 성격으론 남편 못지않던 그녀가 전교조에서 탈퇴하고, 독불장군처럼 교사들에게 군림하는 교장에게 대들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며 교직 생활을 이어온 것도 그런 세계관 때문이었다. (346쪽)


   대학교수였던 남편이 총장 비리를 고발한 일로 재임용 탈락, 해직 등을 당하자 김미하의 삶의 태도는 급격히 구부러지고 만다. 가장 절박한 자기보존과 가족의 생계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타인과 공존하는 이상적 공동체, 그것에 기여하고 그로부터 가능한 이상적 개인의 삶의 행로(?) ‘같은 것’은 현실에 없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매춘을 해야하는 여대생, 지방대학 영문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변두리 사교육 시장을 떠돌며 잠실 엄마들에게 치욕을 당하는 과외 교사 김승필, 아이를 위한 경제교육공동체에 불과한 부부, 교실과 학원, 대학에 새겨진 분명한 계급 표식 등, 󰡔잠실동 사람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교육실태는 경쟁과 각자도생, 승자독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허용적 합리성은 쓸데없이 번뇌하는 여러 갈래를 허용치 않는 것이 좋겠다. 이미 결정지어진 길이라면, ‘차라리’ 갈림길을 없애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작성일 : 2018.04.03
저자 소개  

정은경
1969년생. 문학평론가. 계간 《아시아》 편집위원. 중앙대 문창과 교수. 웹진《문화 다》편집동인.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저서로 『지도의 암실』 『디아스포라 문학』 등이 있음. lenestra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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