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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시지푸 숨결] 귀명창의 소명 혹은 비평의 진경

-정은경 서평집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2017)에 바침     

   

김정남(소설가문학평론가)

 

     

   스스로 소리를 하지는 않지만 그 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귀명창은 잘못된 소리를 지적하여 바로잡는 역할을 하고, 추임새를 넣어 소리에 힘을 더해준다. 귀명창과 비평가의 역할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미적 성취를 평가하고 작품의 의미 맥락을 잡아내어 독자의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는 가교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했을 때, 귀명창의 그것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여기에는 비평가의 쓰라린 내면이 놓여 있다. 스스로 말할 수 없고 언제나 텍스트에 기대어 발언할 수밖에 없는 운명 말이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해석 욕망이 비평가의 자아를 움직인다고 했을 때, 이러한 의식 속에도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가 반드시 숨어 있기 마련이다. 수전 손택은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해석에 반대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복수의 과정에는 제발, 나를 꺼내주세요라는 절실한 기도와 죽일 것이다라는 악의에 찬 비명은 다 같이 공존한다. 이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작가만이 전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평가 정은경은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의 서문에서 예술이 근원적으로 소망충족이라고 했던 프로이트의 예술론을 원용한다. 이러한 욕망은 비평 행위에도 똑같은 녹아 있다. 손탁이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텍스트의 기미를 붙잡고 해석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흥분, 참여,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석의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비평의 에로스라고 했을 때, 정은경의 비평에서 발견되는 텍스트의 정밀한 해석과 가치 판단은, 해석의 소망충족으로 도약하는 비평의 황홀경을 선사한다.


   최근 동시에 출간한 세 권의 비평집은 비평가 정은경의 전방위적 비평안과 폭넓은 해석의 스팩트럼을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눈뜸을 선사한 밖으로부터의 고백 디아스포라로 읽는 세계문학(파란, 2017)과 한국문학의 현단계에 대해 성찰하는 여러 주제론들과 애정을 품은 이지로 읽은 다양한 해설들을 담은 길은 뒤에서 온다(문화다북스, 2017), 그리고 촌철살인의 명쾌한 서평들을 담은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 (케포이북스, 2017)가 바로 그것이다.


  비평이 아카데미화되면서 해석은 고루해지고 참신해야 할 비평안은 현학의 각주로 채워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니면 비평의 현장을 떠나 연구실적으로 대변되는 (오로지 편수로 카운트되는) 논문만 이리저리 꿰어 맞추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비평가 정은경은 강단비평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세계문학을 호흡하며 한국문학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한편, 우리 문학의 절실한 문제를 비평의 화두로 삼고, 독자들을 그 해석의 장으로 이끄는 공감의 비평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성냥팔이 소녀가 켜 놓은 성냥불 곁에서 따뜻하고 환했으며, 그와 더불어 황홀했고 절망했다.”는 그녀의 진솔한 자기고백에는 비평가의 고독한 내면과 진정성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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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를 아프게 했고 분노하게 했던 2014416일의 비극과 그 참혹함을 앞에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절망의 상황을 비평가 정은경은 이렇게 적고 있다.

 

   재난 소설과 영화는, 일종의 평정 상태에서 발생한다. 일상의 사실성 아래 잠재된 층위에서 작가들은 재난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픽션화한다. 416일 우리가 목격했던 세월호 참사는 그 층위를 일거에 제거한 사건이었다. 문학적 상상력이 일체 허용될 수 없었던 날, 그날은 우리의 평정과 상상력이 폭사당해 세월호처럼 저 어두운 바다에 침몰한 날이었다. 어떠한 상상력도 부면에 뜰 수 없었던 시간들, 참혹한 사실 앞에서 사고는 정지되고 상상력은 옴쭉달쭉도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더 기울어진 방으로중에서

 

   어떤 재난영화보다 더 구체적인 비극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고 나면, 상상력은 그 참혹함 앞에 차갑게 굳어버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에 대해 한 문장은커녕 한 단어도 쓸 수 없었던, 망연자실했던 나날들을 비평가 정은경은 우리의 평정과 상상력이 폭사당해 세월호처럼 저 어두운 바다에 침몰한 날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우리의 애통과 비통과 충격다시 살아나고 있었다고 말한다. 방현석의 세월(아시아, 2017)과 같은 작품들이 바로 그것인데, 그녀는 이 작품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완강한 사실이 울면서 토해내는 꿈이고, 심해로 가라앉은 배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물살을 헤집는 분노의 손길이라고 평한다. 방현석의 상상력은 이 소설에서 맹골수도와 한국에 머물지 않고 “304명의 실종자 중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슬픔과 목숨베트남 여인 판응옥타인(한국명 한윤지)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평가 정은경은 바로 세월호의 비극으로부터 확장된 이 작품에서 한윤지(작중 이름 ’)의 아버지인 쩌우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배면에 드리운 비극의 원인을 예각적으로 건져 올린다. 그것은 제국의 침탈로부터 승리를 얻어낸 자랑스러운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도 식민지와 분단의 아픔을 딛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일궈낸 대한민국도 비켜서지 못한 냉혹한 자본주의 물결이다. “철저히 경제논리로 사유화되어버린 공권력과 국가시스템 부재는 결국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침윤된 국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비평가 정은경은 이 글에서 방현석의 세월세월호만을 문제삼지 않고 까마우의 바다로부터 팽목항까지 덮친 그 거대한 신자유주의에 맞서 하나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평한다. “우리가 탄 이 거대한 자본주의 여객선은 지금 침몰중입니까?’라고, ‘안전합니까?’가 아니라 침몰의 기울기에 대해 묻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비평가 정은경은 작품에 담겨 있는 기도비명을 동시에 읽어낸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 속에서 가장 배제되고 차별받는 슬픔인 베트남 여인의 악몽으로부터, 그 비극의 근원을 찾아내고 마침내 세월호의 비극으로부터 우리를 다시 건져 올리는 간절한 기도를 발견해 내기 때문이다. 정은경의 비평이 소설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고통에 공감하는 섬세한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서사의 과정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들어가 텍스트의 의미를 탐사하게 하고, 이를 다시 우리 시대의 문제로 환원하여 그 환부를 날카롭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평가 정은경의 예각적 비평안은 여러 평문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갑을의 윤리감각에서는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은 어려울 것 없을 것처럼 보였던 알바생 혜미를 해고하는 일이 결코 쉽게 완수되지 않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평자는 싹싹하거나 고분고분하지않은 에 대해 이 느끼는 분노가 일종의 허위적 윤리 감각에 불과함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갑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겠지만, 을의 입장에서는 품위나 윤리 따위와는 거리가 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에 새겨진 조감도에서는 부의 편중으로 이른바 1:99의 사회가 된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는 천명관의 퇴근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평자는 수천 명의 실업자들의 풍경 속에서 조정관들이 이 무용지물을 먹여살리느니 살처분하는 것이 낫겠다고투덜거리는 말을 날렵하게 포착한다. 인간이 동물, 더 나아가 미물로 취급되는 승자독식의 잔인한 디스토피아적 풍경 속에서 평자는 부의 분배와 역사가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고 이것은 언제나 관련되는 모든 행위자가 함께 만든정치적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윤이형의 대니를 비평하고 있는 울지마, 인조엄마에서는 “‘대니라 불리는 스물 네 살의 돌보미형 로봇을 통해서 기계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모든 엄마들과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를 읽어내고, 부희령의 을 분석하고 있는 꽃을 해부하다에서는 성기와 섹슈얼리티의 생물학적 진상을 은폐하는 사회적 은유, 에 대한 해부를 수행한다.

오한기의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언급하고 있는 서부극 연가에서는 영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라 실제 인물이 발 딛고 있는 할리우드라는 강고한 자본주의 시스템, 그곳에서의 지난한 여정, 그리고 서부극의 종말에 대해이야기 하고 있음을 명증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현수의 나흘을 비평하고 있는 다큐의 힘과 소설적 감동에서는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허구적 사사의 가치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있다. “소설이 다큐의 사실적 힘과 경합할 수 없지만 소설이 허구를 통해 사실들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이를 현재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너머의 삶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평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 서사문학의 사회적 응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여러 서평들 중에서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또 하나의 평문은 김남일의 천재토끼 차상문을 분석하고 있는 토끼, 인간을 위해 울다이다. “생태적 기형성이라는 일종의 알레고리로 등장한 천재 토끼 차상문은 비인(非人)의 경계에서 인간을 사유한다.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를 위하여 자식을 낳고, 그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며, ‘왼손은 빨갱이!’라는 신념으로 불온한 분자를 색출해내고, 선원들이 사모아 기항지에서 북한 선원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폭력으로 응징했다가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아버지, 좌익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다 산에서 추락한 외삼촌 (중략) 반전시위와 동물해방운동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비버리힐즈의 거대한 저택에서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는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 (중략)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국의 여성은 물론 이국의 여인을 수입하여 교미하는 인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닭을 알 낳는 기계로 만들고, 오리들을 컨베이어벨트에 실어 기능적으로 털을 베끼고 교살하는 인간 등등

―「토끼, 인간을 위해 울다중에서

 

   이처럼 인간이란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지구를 위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해무익한 골칫덩어리라는 사실은 인간 내부의 관점이면서 토끼라는 외부의 관점이다. 더 나아가 휴머니즘정신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그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는 바로 인간적인 행위에 내포된 해악성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평자는 명확하게 드러낸다. 결국 이것은 모두 욕망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제하는 폭력에 기초하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위해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평가 정은경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악에 찬 비명과 인간을 오만함과 이기심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간절한 기도를 동시에 읽어낸다.


   작가가 밝혀 놓은 작은 성냥불에 기대어 함께 울고 위로하고 용기를 얻었다는 비평가 정은경은 분명 탁월한 공감의 비평가이다. 그 비평의 온기와 결기가 있어, 우리 비평의 현재성이 더욱 공고해 지고 있다고 믿는다. 작품에서 기도를 읽어내는 감수성과 비명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통찰력은 비평의 덕목이긴 하되, 누구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비평가 정은경의 이러한 노력이 우리 평단의 주춧돌이 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비평의 생장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평가 정은경은 비평집 길은 뒤에서 온다의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비평은 질주하는 욕망의 맹목성을 멈추고, 욕망의 밑자리를 살펴보는 일이다. 멈추어 성찰하고 사랑하고, 더 넓고 멀리 되돌아보고 앞길을 가늠하는 것.”이라고. 그녀의 비평이 우리의 뒤를 밝히는 성찰과 사랑의 비평으로 깊고 넓게 나아가기를 간절하게 빈다. 그것이 귀명창의 소명이자 비평의 진경을 여는 길이기에!

 

* 이 글은 문예연구2017년 가을호에 발표되었던 정은경 서평집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에 대한 리뷰를 재게재한 것임.

 

 

작성일 : 2018.04.27
저자 소개  

김정남
소설가·문학평론가.
1970년생. 현재 가톨릭관동대 교수.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 펴낸 책으로 문학평론집 『폐허, 이후』·『꿈꾸는 토르소』·『그대라는 이름』, 소설집 『숨결』(제1회 김용익 소설문학상 수상작)·『잘 가라, 미소』(2012년 4분기 우수문학도서)·『아직은 괜찮은 날들』,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등이 있음. phdj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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