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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의 아방가르드 주점]  시는 시 자신을 위해서라도 세상을 바꾸고자 해야 한다 (1)


이성혁(문학평론가)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새롭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근대시가 정립된 이후부터 시인과 시를 읽는 독자로서는 벗어날 수 없는 질문 아닌가 한다. 이 질문은 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시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동시에 제기한다. 시는 개인의 여기라는 전() 근대적인 시에 대한 관념에서 탈피하면서 근대시는 정립되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 시 쓰기는 사대부가 시간 남을 때 쓰는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거는 행위라고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근대시는 시작됐다. 이는 낭만주의로부터 비롯된 생각인데, 미적 근대를 여는 낭만주의에서는 사랑과 함께 시야말로 목숨을 걸만한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낭만주의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 관료 체제에 대해 반항하고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섰는데, 그 의미를 찾는 방랑의 도정은 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낭만주의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삶의 의미, 진정한 욕망을 찾아 나섰던 것, 그것은 삶을 옥죄는 근대의 관료체제와 도구적 합리성이 점령한 사회에 대한 반항과 함께 전개되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 시인은 진정한 삶을 찾아 나서는 과정과 함께 당시 근대초기 사회에 대한 반항을 동시에 전개했던 것이다. 그들은 시라는 절대 세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했으며, 그와 동시에 사회도 바뀌기를 원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이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을 때 이에 열렬히 호응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들은 공포정치로 흐르다가 반동을 겪고 나폴레옹 체제로 굳어지는 프랑스 혁명의 진행에 많은 실망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대의에 지지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사회의 미성숙으로 정치적 혁명의 바탕이 마련되지 않고 있었던 독일에서는, 낭만주의자들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정치적 혁명보다는 시적 혁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시적 혁명은 시 텍스트의 혁신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사회와 문화를 시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다. 하지만 이 낭만주의의 혁명적 기획은, 낭만주의가 보수화되고 종교화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18세기 후반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중반에까지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낭만주의 시 운동은 이제 고리타분한 이념을 보여줄 뿐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낭만주의 시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시의 근대성(미적 근대성)을 개시한 운동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가령 에른스트 벨러 같은 이는 18세기 말에 시작된 낭만주의 초기 운동에서 문학과 예술의 근대성-문학과 예술에서의 모더니즘’-이 완연하게 시작되었다고 논하고 있다.(에른스트 벨러, 󰡔아이러니와 모더니티 담론󰡕, 이강훈·신주철 역, 동문선, 2005, 2낭만주의 시대의 모더니즘 문학의 형성참조) 이를 달리 말하면, 낭만주의야말로 근대시의 운명을 열었으며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근대시의 미적 근대성은 그 운명과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근대시의 운명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질문은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낭만주의 시인들이 던졌던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200년이 넘도록 그 질문에 대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 질문의 제기는 보여준다. 어쩌면 그 질문은 정말 세상이 완전히 바뀔 때까지 계속 제기될 질문일 것이다.

 

근대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라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시는 세상을 바꾸어야 하며, 또한 바꿀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처럼 시를 통해 감성을 변화시키고 감성의 변화가 세상의 변화를 이끈다는 원대한 비전은 달성되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가 갑자기 가시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감성과 사고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어 왔음은 분명하다. 혁명적 열정의 밑바닥에 시적 감성이 깔려 있지 않으면 그 열정은 지속되지 않거나 냉혹한 관료의 길로 빠지게 될 것이다. 아니, 시적 감성이야말로 혁명적 열정이 샘솟을 수 있는 발원지인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기획이 설사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시와 삶에 대한 열정은 지하로 스며들어 후세의 많은 이들에게 세상의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제공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근대시는 근대 초기 낭만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기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삶의 혁명과 함께 시도되는 기획이었다. 삶의 혁명이 동반되지 않는 세상의 변화는 무의미하다. 여기로서의 시 쓰기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절대적인 가치를 세우고자 한 근대시는 삶의 혁명과 세상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또한 그 두 가지 가치에 대한 추구 사이의 긴장 속에서 여러 방식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것이다. 물론 근대시는 낭만주의적인 열정만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근대시는 이러한 삶의 혁명과 세상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원대한 시야를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을 확인해두고 싶다. 현재 한국의 시인들은 근대시의 대선배들이 가졌던 그러한 시야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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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근대시의 선구자들인 낭만주의자들은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대답했으리라고 이 글은 추측했다. 그들에게 시는 삶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존재하며 그렇기에 시 쓰기란 여기가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걸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저 질문에 거리낌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우선 필자부터가 과연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그 질문을 한 번 더 되뇌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잘못하다가는 그 대답이 설득력 없고 무책임한, 또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대답으로 사람들에게 평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는, 시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1960년대 김수영이나 신동엽의 시, 1970년대 김지하나 고은의 시, 1980년대 김남주나 박노해의 시가 가졌던 정치적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겠지만 당시 시는 알게 모르게 저항의 핵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저항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며, 특히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혹독한 시절에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를 갖게 만드는 데에는 시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와서 시는 정치권력과의 긴장 관계를 잃어버리고 만다. 김수영 시구가 말해주듯이 적이 보이지 않는시대가 온 것이다.(김정환 시인도 1990년대에 이러한 식으로 발언한 바로 기억한다.) 시는 불온성을 잃고 지배적인 문화로 편입되어갔으며 시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정치적 열정은 여러 변화된 상황 속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1990년대 한국시의 변화를 비판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1990년대 한국시는 1960~1980년대 시처럼 군사독재체제와 같은 거대한 적과 마주하여 저항하지 않았더라도 그간 시가 주목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들을 가시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성과 생태와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특히 1980년대 말에 이르렀을 때,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한국시는 세상의 변혁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화되고 건조하게 단선적으로 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으며, 소련이나 북한의 획일적인 문학이론의 영향 속에서 미학적 다양성과 창조성이 짓눌리는 경향 역시 생겨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섰던 1990년대 시의 행로는 긍정할 만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시가 세상의 권력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그 권력과의 불화를 드러내는 시적 방식을 찾아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의 시는 안정화되고 있던 문학제도 속으로 들어갔다. 근대에 등장한 미적 자율성은 근대 지배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긴장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그 의의가 있지만 문학의 제도화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자율성보다는 문화의 여러 제도 속에 안착하여 권력화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주요 문예지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구별이 되지 않았고 그 문예지들은 문단의 메이저 제도로서 권력화 되어 갔다. 그 문예지들은 1970-1980년대에 군사독재체제와의 문화적 저항을 통해 이루어놓은 명성에 기대어 메이저 문예지로서 권위를 얻을 수 있었던 측면이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문제가 많았지만 기존의 군사독재체제보다는 눈에 띄게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으로 세상과 불화하는 시는 점차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1990년대 한국 경제의 상황 역시 OECD에 들어갈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시절은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를 맞이하면서 붕괴되었으며 곧 이어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의 민낯인 신자유주의의 권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시는 우리 삶을 생활의 바탕에서 재편하고 경쟁에 내몰리게 하는 신자유주의 권력에 저항하는 길을 찾지 못했다. 다만 1980년대 후반부터 조직되다가 세상의 변화로 인해 조직화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은 노동자 문학회 출신 시인들이 가혹해지는 노동 현장의 모습을 전과 다름없이 고발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나갔지만 문학계 전체, 사회 전체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큰 호응 또는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0년대 등장한 소위 미래파였다.

 

미래파는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점령해가고 있었던 신자유주의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시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래파 시는 90년대 시가 제도화되면서 고착화되는 면이 있었던 시의 표현 형식을 거부하고 젊은 시인들이 자유로이 자신만의 형식을 고안해내는 모습은 보여주었다. 그래서 미래파 시의 형식은 난삽했고, 그 형식은 곧 나르시시즘적인 정당화를 통해 가치화되었다. ‘미래파시가 등장하면서 이들 시에 대해 전복이라는 단어로 가치화가 이루어지곤 했으나 과연 정말로 전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현재 많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과거에는 시에 대해 리얼리즘이과 모더니즘, 전통 서정시 등의 개념으로 설명되었다면, 미래파의 등장으로 아방가르드개념이 한국시를 설명하기 위해 문단에서 중요시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율화된 문화예술 제도를 파괴하고 삶과 세상을 동시에 변혁하고자 했던 아방가르드와 한국의 미래파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미래파 시가 제도화된 서정-민중적 서정이든 여성의 섬세한 서정이나 생태적 서정이든-에 대한 파괴를 시도한 것은 사실이었으며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미래파의 반제도적인 시 쓰기는 곧 제도화되었고 미래파는 이러한 제도화에 곧 순응했기 때문이다.

 

미래파의 시는 젊은 세대의 호응을 받았고 미래파처럼 시를 쓰는 것이 유행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메이저 문학제도는 미래파의 반제도적인 시 쓰기를 자신의 품 안으로 수용했다. 마이너로 출발한 미래파는 시집 출판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의 환영을 받았으며 곧 메이저가 되어갔던 것이다.

 


 

-계속-



 

 


작성일 : 2018.01.08
저자 소개  

이성혁
1967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문화 다》 편집주간.
1999년 《문학과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2003년 《대한매일신문》 문학평론 당선. 평론집으로 『불꽃과 트임』,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미래의 시를 향하여』 등. redland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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