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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일의 영화 트렌드] 악의 숭고와 괴물의 윤리

-안소니 루소, 조 루소 감독의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2018)


심우일(영화평론가)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는 지난 마블에서 제작한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리즈마다 강력한 악당들이 등장했지만 ‘타노스’라는 절대 악을 상징하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블랙팬서>, <가디언 오브 더 갤럭시> 까지 독립된 마블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영웅들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를 위한 단서들을 에필로그의 형태로 남긴 바 있다. 
 

   그동안 독립된 작품들에 흩어놓았던 단서들을 하나로 모으며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라는 형태로 결산할 터인데, 이번 작품은 마블시리즈에 출현했던 모든 영웅들이 ‘타노스’라는 빌런과 싸우기 위해 등장한다. 벌써 여섯 개의 인피니티 스톤에서 시작한 장대한 서사의 끝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올해 개봉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는 대서사의 전반부에 해당하며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 구성에 있어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웅들을 지구라는 한 장소로 집결시키기 위해 동시적인 시간의 평면에 시퀀스를 배치한다. 그리고 타노스라는 빌런이 우주의 절대적 힘을 담고 있는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과정을 중심으로 분할된 장면들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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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는 필연적으로 타노스라는 빌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짧은 시간 안에 서사를 전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의 몰입을 강화하기 위해 타노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강화된다. 왜냐하면 후반부에 해당하는 다음 작품과의 연결성만큼 현재 개봉된 영화의 완성도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라는 빌런에게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미감(美感)을 부여하고 있다. 단순히 강한 힘에 대한 추구와 우주정복을 꿈꾸는 빌런이라고 생각했던 타노스를 영화에서는 실존적인 자기 운명의 개척자로 다룬다. 분명 운명에 패배할 것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피하지 않고 모든 죄업의 책임을 받아들이며 숭고한 희생을 감내한다.  


  마치 영화는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덕분에 영화는 마블시리즈에 대중들이 기대하는 호쾌함보다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준다. 작품이 지닌 무거운 분위기에 관해 취향의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망친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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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인피니티 스톤을 얻기 위해 이십 년간 키운 자신의 딸을 절벽에 내던져 희생시키는 제의 장면이다. 이 시퀀스가 중요한 이유는 광기어린 학살자로 보이던 타노스가 지닌 내면의 진정성이 처음으로 눈물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은 타노스가 배신자인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타노스가 자기 꾀에 넘어간 꼴이라고 판단할 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눈물 흘리는 모습으로 딸을 희생시키는 타노스의 슬픔이 전달된다.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회한의 분위기 그리고 타노스에게 실존적인 운명의 무게를 부여하는 것은 그의 눈물이 진정성을 표현하는 실재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바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진짜 눈물의 공포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타노스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우리의 매끄러운 가치판단이 허구적 독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실재의 침입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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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그의 눈물이 거짓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영화는 짙은 무게감 잃고 후속편을 위한 두 시간 삼십 분짜리 예고편이 되었을 것이다. 타노스라는 빌런이 지닌 힘에 대한 전시와 영웅들이 연합을 구축하게 되는 근거를 기능적으로 부여하는 역할에 영화의 의미는 한정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작품의 반전이라고 한다면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통해 사라진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타노스라는 인물이 사건의 주체가 되는 시작점이자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고향상실의 근원적 상태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실제 타노스가 타임 스톤을 사용하여 돌아간 고향은 상상적 현실이다. 타노스가 수많은 싸움을 해온 것은 상실된 고향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다. 하지만 타노스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가 살던 고향의 소멸 자체는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노스의 운명은 재귀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이미 그의 파괴 행위의 결과는 모든 행위의 시작점으로 귀결되었다. 타노스는 영원회귀의 반복 속에서 부유하는 방랑자의 형상을 취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삶과 존재의 무의미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이 지속하는 삶의 내부에서 자신의 본래적이고 실존적인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는 힘의 의지가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우리는 타노스라는 존재가 영웅인지 혹은 학살자인지 묻게 된다. 그는 절대적인 악당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기의 운명과 투쟁하고 모든 죄업의 대가로 사랑하는 딸마저 희생시킨 영웅인가. 그것도 아니면 상실된 고향의 회복, 다시 말해 멸망한 자기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희생양인가. 어떻게 타노스라는 존재를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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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善)과 악(惡)이란 무엇인가. 선악의 경계는 명료하지 않다. 우리가 악이라고 칭하는 모든 것은 선이라 불리는 질서를 벗어난 불온한 의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악이란 단지 불선(不善)한 것을 지시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타노스라는 존재는 ‘괴물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필자는 타노스라는 존재를 ‘악당’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괴물의 의미는 투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불투명한 존재성을 지닌 대상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의 일상적이고 매끄러운 표면적 가치에 균열과 해체를 가져오는 존재의 특이성을 생산하는 어떤 불투명한 대상이다. 괴물은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괴이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파악 불가능한 불온함의 정서를 주는 대상이다.  


  과거 사드가 “쾌락을 즐겨라!”라는 정언 명령을 자기 자신에게 입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삶을 향유하는 것처럼, 타노스는 “고향을 회복하라!”라는 명령을 자기 입법함으로써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법을 착실하게 수행하여 나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노스는 윤리적이고 사건적인 주체이다. 자기 입법을 통해 스스로 자기 윤리를 지키는 주체가 됨으로써 기성의 질서와 투쟁하고 싸우며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창조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영화의 결말을 생각하면 그는 모든 것을 잃고 패배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패배가 그의 윤리적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패배는 단지 현재의 질서와 가치들이 임시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입법한 법의 형식에 속한 내용으로 존재하기, 그리하여 기성의 질서에 균열을 일으켜 새로운 삶의 원리와 형식을 창조하는 것, 이것은 자기 고유의 내재적인 삶을 창조하려는 힘의 의지가 발현되는 순간일 것이다.  



 별점

 대중성

   10점.jpg

 평균

 최종 별점

 작품성

   8점.jpg

9.0

10.0

 



 

작성일 : 2018.04.30
저자 소개  

심우일
영화평론가.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
201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fola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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