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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 소설집 『아직은 괜찮은 날들』, 작가 김정남과의 밀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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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7년 12월 17일

참석자 : 최강민(인터뷰어, 문학평론가), 김정남(소설가)



최강민 : 안녕하세요. 김정남의 소설집 『아직은 괜찮은 날들』이 최근에 발간되었습니다. 소설가 김정남은 2007년에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된 이후, 소설집 『숨결』(2010)과 『잘 가라, 미소』(2012),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2013)을 발간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하는 중견작가입니다. 󰡔아직은 괜찮은 날들󰡕은 김정남의 세 번째 소설집입니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단편들 모음집인 소설집이 요새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이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괜찮은 날들’이라는 소설집 제목은 아직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지 않은 날들이 올 수도 있음을 불길하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제목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김정남 소설가가 이 소설집에서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창작 작업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남 : 네. 누구나 그렇듯이 생이란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은 아직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이란 삶과 죽음의 욕망 사이에 유예된 순간순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은 괜찮은 날들’이라는 소설집 제목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긍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연작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소설집에는 유독 “괜찮아.”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아마도 현재를 견디려는 저의 무의식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소설집은 모두 사물에서 모티프를 얻는 작품들입니다. 가위, 계단, 비누, 저수지, 종이상자, 버스 정류장, 여인숙, 편의점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나’를 향해 모아집니다. 나에 대한 연구, 이것이 이 소설의 주안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안다는 것이 곧 타자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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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민 :  『아직은 괜찮은 날들』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인 「해변 여인숙」을 읽어보면 ‘나’, 여성 ‘ M’, 친구 ‘P’와 사랑의 삼각 관계, 불륜 사랑이 등장합니다. 삼각 관계의 불륜 사랑이라는 모티프는 장편 『여행의 기술』에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학교 동창 사이에서 사랑의 삼각 관계와 불륜 사랑이라는 모티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가 있는지요? 사랑의 파탄과 불륜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남 : 사실, 불륜이나 삼각관계들은 제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간의 관계입니다. 이는 이러한 소재가 가지는 선정적 요소와는 무관합니다. 그것은 관계의 불완전성이나 존재의 불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란 존재론적 불안을 바탕으로 하니까요. 연기론에서 말하는 인연의 엇갈림이란 것도 관계에 대한 숙명적인 불완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실존적 불안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미래의 시간 속에 내어던질 수 있는가에 달려있겠지요.


최강민 : 『아직은 괜찮은 날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화자는 모두 1인칭입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사를 진행시킨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어떤 서사의 효과를 의도했는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김정남 : 일반적으로 1인칭 소설은 3인칭에 비해 객관화가 부족하다는 형상화의 미숙성을 지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설 문학사에서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단편소설들이 모두 3인칭인 것은 아닙니다. 형식적으로는 3인칭이지만 사실상 1인칭인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진기행」입니다. 근대문학의 핵심적 요소는 바로 개인의 발견이 있고, 이때 개인이 사회적으로 문제적이라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일단 저는 이 소설집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벌레처럼 작은 나라는 존재 안에 담긴 세계상의 잔혹성과 그를 딛고 일어서는 인식론적인 싸움 같은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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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민 : 『아직은 괜찮은 날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에서 소외된 주변부 인물에 가깝습니다. 서울 대도시에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남성 주인공이 아니라 소도시에서 생활하는 30, 40대 남자 주인공이 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 자신이 지방인 강릉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인가요? 아니면 서울이 아닌 주변부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상인의 모습을 통해 서울중심주의를 은연중에 비판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김정남 : 물론 로컬리티의 관점에서 서울중심주의에 대한 대척적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 문학의 공간은 잠정적으로 대도시를 근간으로 합니다.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곳을 서울로 인식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문학은 대도시 중심의 사유에 갇혀 진정한 의미에서 주변부에 대한 성찰이 부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급적,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와의 갈등 속에서 중첩적인 마이너리티(multiple minority)의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의 소도시가 소설의 중심적인 공간으로 제시된 적이 있나요? 대체로 그곳은 여행지와 같은 피안의 공간으로 양념처럼 제시될 뿐이지요.


최강민 : 「버스 정류장」을 읽어보면 중심 인물로 누이가 등장합니다. 저번 『여행의 기술』에서도 주인공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엄마와 같은 누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이와 주인공인 남동생은 부모의 이른 죽음 속에서 힘든 삶을 살게 되고, 남동생이 나이 터울이 많은 누이를 엄마와 같이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서사는 『여행의 기술』, 「버스 정류장」, 「바람 계단」에서 동일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결론에서 “나는 누이의 가냘픈 손을 꼭 부여잡고 따스한 손등에 말없이 얼굴을 비빈다. 귓가에 사르륵대는 소리가 괜찮아, 괜찮아 속삭이는 것 같다.”에서 엄마와 같은 누이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처럼 김정남의 소설에서 엄마와 같은 누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서사가 비슷하게 변주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남 : 자전적으로도 제 부모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능한 존재였습니다. 게다가 저의 아버지는 이른바 삼팔따라지로 불리는 실향민으로서 뿌리 뽑힌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자신의 자식들에게 돌려줄 사랑도 없고 그에 대한 학습도 부재한 존재였던 것이지요. 어머니 역시 엄격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부친의 무능을 꾸역꾸역 메워야 하는 순종에 가까울 정도의 우직성을 가지고 있었고요. 제 소설에 등장하는 부모들이 대체로 무능하거나 맹목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아마도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나의 경우는 달라요. 언제나 다정다감하고 생모에게서 얻을 수 없는 살뜰한 감정을 받을 수 있어요. 굳이 말하자면 누이 콤플렉스 같은 것이 저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강민 : 김정남 소설에서 가족은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남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은 대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아닙니다. 「해변의 여인숙」, 「바람 계단」 등에서 아내와 남편은 불륜을 하고, 이혼을 하고, 아이는 자폐아이거나 왕따를 당한 끝에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외로운 영혼의 주인공인 성인 남성은 가족에게서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소외된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중심은 부부입니다. 장편 󰡔여행의 기술󰡕, 「해변 여인숙」, 「비누」에서 부부의 불륜과 이혼을 자주 등장시킨 것은 어떤 소설적 효과를 겨냥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가족을 ‘타인의 감옥’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궁금합니다.


  나는 운전석에, 아내는 조수석에, 아이는 뒷좌석에, 좌석의 형식에 맞게 구조화된 3인의 조합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다. 동시에 이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들로만 구성되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타인의 감옥이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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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인간의 존재론적 취약성과 불안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가정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기본적인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제 소설의 인물들은 아내에게서, 자녀에게서 생의 의미나 위안을 얻지 못합니다. 그것은 책임이거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그 원인 어디에 있는가에 하는 것일 텐데, 대체로 그것은 자녀의 질병이나 가장의 무능, 혹은 쌍방간의 외도로 인해 발생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가족이라는 혈연적 유대는 사실상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지배이념이자 모럴로 기능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 간에, 관계의 해체는 무수히 발생합니다. 결국 실존적으로 우리는 모래알같은 개인일 뿐입니다. 문제는 가족구성원 각자가 철저하게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관계나 연대의 모색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구의 남편이거나 아내이거나 누구의 자식이기 이전에, 이 세계에 무의도적으로 내던져진 존재이니까요.

 

최강민 : 김정남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은 장편 『여행의 기술』에서 자폐아인 겸이, 「바람계단」에서 왕따 아이, 「비누」에서 아토피를 앓은 아이 등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하고 적응에 실패한 채 소외되거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라고 생각할 때 원만한 부부 관계를 이룩하지 못한 부부가 아이마저도 정상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때, 가족과 작중주인공의 미래도 절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아이들을 병을 앓거나 소외된 상태로 자주 등장시켜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정남 : 정신적인 혹은 육체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계는 커다란 감옥입니다. 그들은 위한 최소한의 배려나 사회적 안전장치는 매우 허술합니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 지칭하며 비판(난)하던 흐름이 최근 들어 주춤한 듯합니다. 사실상 정권만 바뀌었을 뿐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옥반도 운운하던 흐름이 줄어든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몇 개월 만에 우리 사회에 무슨 큰 변화라도 일어났나요?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언제나 ‘헬’이었습니다. 헬조선이란 용어 자체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지나친 반응이었거나 진정한 지옥을 모르는 이들에게서 유행어처럼 번진, 일종의 “은유로서의 질병”일 뿐이었습니다. 제 소설에서 구원 없는 현실을 자꾸만 조명하는 것은, 긍정병에 도취된 비성찰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삶의 근원적인 모순과 지옥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헬이라고 하지 말고 진정한 헬을 보자는 것이지요.


최강민 : 장편 『여행의 기술』, 「바람 계단」, 「비누」, 「종이상자」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삶에 실패한 채 비교적 일찍 사망합니다. 어머니도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남은 가족들은, 특히 주인공인 남성은 세상의 세파에 시달리며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버지 부재와 어머니 부재라는 서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가 있는지요, 아니면 작가는 부모 부재라는 서사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남 : 부모의 무능이나 조실부모의 현실은 제 소설에서 인물의 실존을 부조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상식적인 얘기입니다만, 이 세계에 내던져진(피투)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에는 스스로 여린 무릎을 펴고 일어서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문제는 바로 여기서 생겨나는 기투의 방식일 텐데요.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이 지점에서 세상과 쉽게 타협하거나 입지전적으로 살아남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취합니다. 그 방법이란 현재의 자신을 낳게 한 과거의 기억과 끊임없이 싸우거나 자신이 버텨내야 할 현실과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해 나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실천하는 시속의 사람들과 제 소설 속 인물이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인간은 자신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 싸움이 없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강민 : 『아직은 괜찮은 날들』에서 작중주인공들의 자아존중감은 대개 낮다고 생각합니다. 「저수지」에서 강간의 결과물인 소설가인 ‘나’, 「종이상자」에서 미혼모의 산물인 ‘나’는 대표적으로 자아존중감이 낮은 인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작중인물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제목이 ‘아직 괜찮은 날들’인데, 이것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것은 없는지요?


김정남 : 제 소설의 인물들이 대체로 자아존중감이 낮은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물의 선험적 조건에서 규정되기도 하지만, 세계와의 힘겨운 길항이 만들어낸 마멸의식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최근 ‘자뻑’으로 일컬어지는 자아도취는 자존의식을 넘어선 과도한 긍정병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반성기제도 작동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이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현대 사회의 명령은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입니다. 이러한 능동성이 우리 사회에 파시스트적인 가속도를 부여하는 근원입니다. 자아존중감이 낮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기력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불도저 같은 거친 호흡을 멈추고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성이나 성찰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정신의 밑자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긍정은 소중한 부정의 가치를 마비시켜 버립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 괜찮은 날들’이라는 소설집의 제목은 부정의 에너지를 발판으로 한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 아직까지는 감당할 만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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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민 :  이 책을 발간하면서, 아니면 발간한 후에 느낀 소감 등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남 : 앞에서도 1인칭 소설을 한계의 의미로 지적하셨지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자아들과 난타전을 치른 느낌입니다. 승패를 떠나서 가능하면 미학적 포진으로 그것들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퍼낼수록 깨끗한 물이 새로 고이듯이, 제 생에도 그런 생명수가 새로 고이길 바랍니다. 그 물이 마를 때까지 저의 두레박질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리하여 그 우물가에 풀도 자라고 목마른 생명들도 찾아와 쉬어갈 수 있는 넉넉한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죽기 전에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순간이 오겠지요.


최강민 : 김정남 작가님, 귀한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았습니다.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김정남 작가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번 책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합니다. 소설이, 문학평론이 힘든 시대에 꿋꿋하게 소설을 써나가는 김정남 소설가를 비롯한 많은 소설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독자들이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정남 : 제 자신도 잘 알지 못한 작품 속 무의식을 일깨워 주신 소중한 대담이었습니다. 문학평론이 또 하나의 창작이라는 것을 이 대담을 통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최강민 선생님의 섬세한 비평안이 제 어두운 이야기 숲에 길을 비추는 손전등이 되어주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작성일 : 2017.12.18
저자 소개  



최강민(인터뷰어, 문학평론가), 김정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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