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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옥의 육아와 삶은 달걀] 가르치지 않아도 말하는 단어, 아빠

김경옥(수필가)



   아이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그 존재 자체로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일 터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그런 연유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한껏 쉽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부모란, 그저 그 존재 자체가 필요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어떤 조건을 달지 않는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 옆에 있어주면 된다. 그저 아이의 아빠이고, 엄마이면 그 뿐, 어떤 엄마이고, 어떤 아빠인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인 것이다. 그저 내 생김, 내 존재 자체로 내가 너의 엄마가 되어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체가 되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부모라는 자리가 의미하는 바가 된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서 특별히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부모 자체에 대해서 스스로 발견하고 깨닫는다. 아이의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아이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부모가 아이를 생각하는 것이 더 가벼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에게 아이는 자신의 생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라는 말이 늘 내게 조금은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제서야 말을 배우고, 이제서야 걸음을 배우는 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그 남자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엄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것이기에, 그래서 엄마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첫째 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옹알이를 시작하면서부터, “아빠”를 가르쳤다.


    “빈아, 아빠 해봐. 아빠”


   나는 내가 늘 아이에게 아빠를 연습 시키면 그러니까 아이가 엄마보다 아빠란 말을 더 많이 들으면 자연스럽게 아빠를 먼저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위해서였다. 남편이 아이가 “아빠”를 “엄마”보다 먼저 얘기 하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했다.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나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남편을 위해서, 나는 남편에게 부모로서의 기쁨을 나름대로는 선물하고 싶었고, 아이에게 “아빠”를 많이 연습시킨 것은 일종의 나만의 전략과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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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그런 나의 바람대로, 비록 옹알이에 불과했지만 엄마 보다 아빠라는 단어를 먼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마침내 미리 계획해 두었던 멘트를 남편 앞에서 내 뱉었다.


   “아유, 쟤는 지 엄마가 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다 했더니, 결국은 지 아빠가 와서 잠깐씩 와서 놀아준다고, 세상에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얘기하네.. 아, 웃겨.”


   남편은 내심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기뻤다. 만족스러웠다.

 

   ‘그래, 잘했다, 나. 저 사람, 기분 좋았을 거야.’


    그리고 둘째가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첫째가 비록 옹알이지만 “아빠”를 먼저 말했던 것이 아내의 계획된 연습 때문이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갔다. 나와 아이들 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아이 둘과 남겨진 나는 내 몸뚱아리와 아이 둘을 그저 생존의 상태로 건사하는 것이 얼마간의 목표가 되었다. 제 정신인 상태로 나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을 지났다.


    그런 시절이었기에 나는 둘째에게는 첫째에게 했던 그런 계획된 연습 따위를 시행할 여유가 없었다. 물론 그보다 먼저, 아예 아빠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아빠라는 말은 가르칠 필요조차 없었고, 우리 집에서는 심지어 금기시할 단어가 되었다.
 
   애기 아빠가 죽고 나니, 나는 얼마나 많은 동화책에 아빠가 등장하고, 얼마나 많은 어린이용 TV 프로그램에서 아빠가 등장하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한동안은 모든 책과 모든 TV 프로그램에서 아빠라는 단어를 통째로 뽑아버리고 싶었다.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기들에게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웠으니까.


   “자 이게 컵이고, 이게 전화기고, 그리고 내가 엄마고, 저 사람이 아빠야.” 하고. 하나씩 사물과 사람에 대해서 실체와 단어를 매칭해 주며 가르쳐 줘야 하는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아빠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우주 어디라도 헤매다가 아빠라고 가리킬 수 있는 사람을 구해와서, “자 여기 너네 아빠 있다. 아빠. 해봐. 아빠.”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퍼즐의 빈 공간을 맞추듯이 어느 순간 없어진 아빠의 자리를 또 갑자기 어느 순간 꼭 맞출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빠란 자리에는 그 이름에 상응하는 진중한 무게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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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둘째에게는 단 한번도 아빠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물론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했겠지만, 그는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기 전에 죽어버렸기에 그가 했던 몇 번의 아빠라는 단어는 둘째에게 그다지 미치는 영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의 둘째는 한번도 내가 가르치지 않았던 아빠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다. 아빠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한번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아빠란 말을 일부러 어디서 배운 적도 없었지만, 분명 “아바바바” 하고 아빠 비슷하게 이야기 했다. 어떨 때는 정말 정확하게 “아빠”라고 들리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일까, 첫째 책을 읽어줄 때 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아빠 엄마라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말하게끔 태어날 때부터 그 조그만 가슴 속에 지니고 태어나는 것일까? 


   내가 잘못 들었을까 생각도 했던 즈음에,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을 때, 어린이집 선생님도 그 이야기를 하셨다. 아이가 “아빠”라고 이야기 한다고.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 것이 맞았다. 내 아이는 한번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아빠라는 단어를 스스로 익혀서 이야기했다.


   아이는 지금도 내가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자신의 옆에 있지도 않은 대상에 대해서 공허한 메아리처럼, “아빠 아빠”를 말한다. 어쩌면 첫째가 아빠를 먼저 했던 것도 나의 교육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나의 아이들은 아빠를 먼저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하게도 둘째는 한번도 내가 말하지 않은 아빠를 얘기한다.


    사람들은 많이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느니,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그렇게 자랑스럽게,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사랑은 그 반대의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떠나 죽은 아빠에 대해서, 심지어 배운 적도 없는데, 마치 본능처럼 아빠를 부르는 내 아이를 보면서, 나는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과연 아이들이 부모를 대하는 마음보다 크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저 아직 돌도 안된 아이가 옹알대는 아무런 뜻이 없는 돌림노래 같은 단어일 뿐이지만, 나는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아이들은 내가 주는 사랑으로 사랑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안에 사랑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저 부모를 가슴에 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 훨씬 많은 아이들. 어쩌면 그 조그만 가슴 속에 부모란 단어를 내재한 상태로 태어난 것만 같은 내 아이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인가. 나는 늘 너에게 “나는 너보다 먼저됨으로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기 훨씬 그 이전부터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어쩌면 그 말, 네가 내게 해주는 말이 아니던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엄마를 말하고 아빠를 말한다. 그들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존재. 배우지 않아도 그저 깨닫게 되는 자연스러운 존재. 그 당연함을 우리는 절대로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보다, 부모에게는 아이가 자기 인생의 일부일 뿐이지만, 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라는 말이 더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조금 슬픈 진리이지만.


( 블로그 ‘김경옥의 옥님살롱’ 운영 http://expert4you.blog.me/ )





작성일 : 2018.04.19
저자 소개  

김경옥
수필가, 편집동인.
1982년생, 2017 <문장21>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expert4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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